생명의 고향 바다(엽록소와 헤모글로빈, 황칠나무)
바다는 지구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곳입니다. 46억 년 전 지구가 형성된 이후, 내부의 수증기가 응축되어 바다가 만들어졌고, 그 영양분 가득한 바닷물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출현했습니다. 식물학자의 여정은 보길도 예송리 선착장에서 시작되어 다시마 양식장과 전복 농장을 거쳐, 식물 진화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이 글은 바다에서 육지로 이어진 생명의 대장정과 식물의 피라는 독특한 관점을 통해 인간과 식물이 공유하는 생명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바다에서 만난 식물 진화의 흔적
보길도 앞바다의 다시마 양식장은 식물 진화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새벽 6시, 선착장을 출발한 배는 다시마 양식장으로 향했고, 김대숙 선장님은 크레인으로 포자를 줄에 가면서 키운 양식 다시마를 끌어올렸습니다. 줄줄이 올라오는 다시마는 마치 외계 생명체처럼 신비로웠고, 5m 넘게 자란 다시마의 뿌리는 의외로 작았습니다. 육상 식물의 거대한 뿌리와 달리, 해조류는 온몸으로 물과 양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뿌리가 단지 지탱하는 역할만 합니다. 이는 태초의 물속 식물들이 뿌리가 크지 않았다는 진화의 증거입니다.
다시마는 갈조류에 속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김은 홍조류, 파래는 녹조류입니다. 육상 식물과 가장 가까운 식물은 파래이고, 그다음이 홍조류인 김, 갈조류인 다시마는 계통 관계가 상당히 멉니다. 바다에서 막 건진 다시마는 놀랍도록 아름다웠고, 그 신선함은 밭에서 금방 딴 채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시마는 보길도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인 양식 전복의 먹이로 쓰이며,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진화의 역사가 순환합니다. 식물학자는 다시마를 보며 수억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를 떠올렸고, 바다에서 출발한 태초의 식물이 어떻게 육지로 진출했는지 그 여정을 상상했습니다.
약 37억 년 전 출현한 남색균은 지구상 생명체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을 보여주는 최초의 광합성 생물입니다. 남색균이 있었기에 지금의 식물들이 존재할 수 있었고,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화석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물속에 살던 식물 조상들이 육지로 올라왔을 때는 아주 작았지만, 녹조식물, 이끼, 고사리 순으로 점점 커지며 육상을 정복했습니다. 보길도 앞바다에 펼쳐진 섬들은 마치 초록색 양탄자가 덮인 것처럼 나무들이 빽빽했고, 이는 바위 위 이끼들이 촘촘하게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닷속 생물들이 점점 육지로 나와 처음엔 아주 작았다가 거대하게 성장했지만, 최초의 작았던 모습을 계속 연상시키는 풍경이었습니다.
식물의 피, 엽록소와 헤모글로빈의 공통점
전복회를 먹으며 식물학자는 독특한 생각에 이릅니다. 바다에서 갓 잡은 전복의 맛은 마트에서 사 먹던 것과 달랐고, 반으로 자른 단면에 보이는 투명하고도 흰 실핏줄 같은 모습에서 살아있는 생물의 피를 느꼈습니다. 그 전복의 맛은 피의 맛과 비슷했고, 이는 식물의 피라는 엉뚱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미 식물의 피맛을 알고 있습니다. 단맛도 있고, 당근의 맛도 있으며, 쌉쌀한 채소들의 맛도 있습니다. 우리 피는 빨간색이고 전복의 피는 투명한 색이었다면, 식물의 피는 무슨 색일까요? 진한 자주색,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까지 모두 식물의 피의 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들이 이렇게 다양한 색상을 가지는 것은 식물 색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빨간 계열은 안토시아닌 색소, 주황색 당근은 카로틴, 노란색은 크산토필, 초록색은 엽록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식물의 피의 색은 초록색입니다. 엽록소는 너무 작아서 보기 힘들지만, 엽록소가 들어있는 엽록체는 커서 비교적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닭의장풀의 줄기를 잘라 현미경으로 보면, 커다란 덩어리인 식물 세포 안에 초록색으로 보이는 작은 덩어리들이 바로 엽록체입니다. 엽록체 안에 엽록소가 가득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식물은 초록색으로 보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식물의 초록 피와 사람의 붉은 피가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석에서 손가락을 따서 혈액 표본을 만들어 관찰한 결과, 우리 피 속 적혈구가 동그랗게 보였습니다. 우리 피는 45% 정도가 적혈구이며, 적혈구 세포 안에는 2억 개가 넘는 헤모글로빈이 들어가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각각의 동그라미가 적혈구이고, 적혈구 하나하나 안에 수많은 헤모글로빈이 빨간색을 나타냅니다. 엽록소는 초록색이고 헤모글로빈은 빨간색이지만, 이 두 분자는 사실 굉장히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포르피린 환이라고 하는 고리 모양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엽록소에는 마그네슘이 있어 초록색으로 보이고, 헤모글로빈은 철이 있어 빨간색으로 다르게 보일 뿐입니다.
식물과 동물이 이렇게 비슨한 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약 35억에서 38억 년 전 등장한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인 루카(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구가 처음 생겼을 때는 무생물만 가득했지만, 어느 순간 박테리아 종류일 것으로 추정되는 생물이 등장했고, 그 생물이 루카입니다. 하나의 공통 조상이었다는 증거는 모든 생물이 DNA와 RNA라는 유전물질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믿기 어렵지만, 루카라는 공통 조상을 생각하면 동물, 곰팡이, 식물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식물에서도 헤모글로빈이 발견된 연구 결과가 있으며, 특히 비트의 헤모글로빈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트를 자르면 나오는 붉은 액체를 보며 정말 사람의 피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기에 정말 헤모글로빈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습니다.
육지로 올라온 식물과 황칠나무의 비밀
예작도에서 만난 고사리는 최초의 나무였던 식물입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꽃피는 식물들과 다르게 고사리는 꽃이 피지 않고 포자로 번식하지만, 최초로 키 큰 식물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고사리 종류였습니다. 땅을 기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선 식물, 거대한 나무의 출발이 우리가 잘 먹는 고사리였던 것입니다. 고사리로 뒤덮인 땅은 마치 작은 정글 같았고, 공룡도 나오기 전 아주 오랜 옛날 최초의 나무가 육지에 자라기 시작한 풍경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완도수목원 산림박물관에 전시된 쿡소니아 화석은 약 4억 2천만 년 전 출현한 원시 육상 식물입니다. 최초의 식물이 물속에서 나와 점점 육지를 점령하기 시작할 때, 아주 낮게 깔려 있던 이끼 같은 형태에서 쿡소니아는 정말 거대한 식물이었습니다. 쿡소니아가 최초로 관다발을 만들었고, 관다발은 줄기 속에 물과 양분을 이동시키는 획기적인 구조였습니다. 초기 식물들은 뿌리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았지만, 쿡소니아는 관다발이 있었고, 화석에도 보이는 끝의 포자가 동그랗게 달려 있었습니다. 이끼류에서 양치식물, 거시 식물, 그리고 꽃이 피는 속씨식물에 이르는 수억 년의 여정에서 수많은 나무와 풀과 꽃이 탄생했습니다.
예송리 몽돌해변의 상록수림은 약 300년 전 마을 주민들이 방풍림으로 조성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숲입니다. 동백나무, 까마귀쪽나무, 감탕나무 등 남도를 대표하는 나무들로 가득했습니다. 동백나무는 카멜리아라는 속 이름으로 불리며, 차나무와 같은 그룹에 속합니다. 차나무꽃과 열매는 축소해 놓은 흰 동백꽃과 닮았습니다. 까마귀쪽나무는 녹나무과 식물로 반짝거리는 도톰한 잎을 가지고 있으며, 수꽃과 암꽃이 따로 피는 나무입니다. 뒷면에 갈색 털이 빽빽하게 있어 보들보들한 촉감이 마치 소의 귀를 만지는 것 같다고 해서 속이나물이라고도 불립니다.
예송리 마을 뒤편 깊숙한 곳의 황칠나무 농장에서는 황금빛 수액인 황칠을 채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황칠은 삼국시대부터 쓰인 아주 오래된 전통 도료로, 신라 수도 경주의 귀족 저택을 황금색으로 칠했던 것이 바로 보길도 등 완도 일대에서 생산된 황칠이라고 추정됩니다. 황칠나무는 두릅나무과에 속하며, 독이 있는 옻나무와 달리 독이 없고 옻이 오르지 않습니다. 상처를 내면 하얀 액을 분비하고, 이 하얀 액이 산화되면서 갈변으로 색깔이 변합니다. 황칠 수액도 식물의 피처럼 응고되는 과정을 거쳐 나무의 상처를 아물게 합니다. 한 나무에서 한 번에 3~5g 정도 채취할 수 있으며, 1년에 약 3회 정도 채취합니다. 상처를 낸 곳은 2년 정도 지나면 표피가 아물게 됩니다.
결론: 과학과 시적 상상의 균형
바다에서 시작된 생명의 역사는 다시마, 전복, 고사리, 황칠나무로 이어지며 식물 진화의 장대한 서사를 보여줍니다. 엽록소와 헤모글로빈의 유사성은 인간과 식물이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같은 조상에서 출발했다는 과학적 시적 상상력이 잘 어우러진 글이지만, 독자가 감동과 정보 사이에서 균형 있게 읽어야 더 깊은 의미가 살아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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