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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유리 교수의 인터뷰는 식물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능동적 생명체로 재조명합니다. 잎을 '에너지 생산 공장'으로 비유하며, 곤충·동물·미생물·가뭄·바람 같은 다양한 위협에 맞서 정교한 방어 시스템을 발전시켜온 식물의 생존 전략을 탐구합니다. 움직이지 못한 채 수십 년을 살아가는 식물이 어떻게 먹고, 성장하고, 번식하며, 경쟁에서 살아남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동시에, 이것이 인간의 생존 이해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식물세포벽

세포벽이 만든 진화의 갈림길

이유리 교수는 식물 연구에서 세포벽의 역할을 '갑옷'에 비유하며, 진화 과정에서 이 구조를 유지한 쪽과 벗은 쪽이 각각 식물과 동물로 분화했다고 설명합니다. 세포벽은 단순한 보호막이 아니라 식물의 이동성, 소통 방식, 생존 전략 전체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세포벽이 있기 때문에 식물 세포는 다양한 '벽돌' 모양을 만들 수 있고, 확대해 보면 2D가 아닌 3D 건축적 구조처럼 보입니다. 환경과 발달 단계에 따라 이 구조는 '리모델링'되듯 변화하며, 이 과정을 현미경으로 세포 단위로 관찰하는 것이 연구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는 비판적 시각도 필요합니다. 세포벽을 중심으로 동물과 식물의 진화적 분기를 설명하는 방식은 직관적이지만, 진화는 단일 요인으로 환원하기 어려운 복잡한 과정입니다. 세포벽 외에도 광합성 능력의 획득, 엽록체의 내공생 이론, 생식 전략의 차이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단순화된 설명은 대중의 이해를 돕지만, 과학적 정밀성과의 균형이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세포벽이 식물의 정착형 생존 전략을 가능하게 한 핵심 구조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며, 이는 식물이 원거리 소통 메커니즘을 발전시킨 배경이기도 합니다. 세포벽으로 인해 신경계나 혈관계 같은 빠른 신호 전달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못한 식물은, 대신 호르몬 신호와 전기적 신호,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교환합니다.

연꽃잎의 비밀, 셀프클리닝 기술의 원리

인터뷰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는 연꽃잎의 셀프클리닝 능력입니다. 연꽃은 더러운 물에서 자라면서도 잎 표면이 항상 깨끗하고 방수성이 뛰어나며, 이 원리를 분석해 방수 페인트나 의류 소재로 응용하는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잎은 광합성이 일어나는 에너지 생산 공장이기 때문에, 먹힘뿐 아니라 빗물의 과다 흡수, 먼지 축적 같은 환경 스트레스도 막아야 합니다. 스스로 '깨끗함'을 유지하는 전략은 생존의 필수 조건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의문도 생깁니다. 셀프클리닝의 구체적인 메커니즘—미세한 거칠기, 왁스층의 화학적 구성, 물방울과의 접촉각, 먼지 제거 효율이 유지되는 환경 조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밀'이라는 표현은 기대감을 높이지만, 검증 가능한 근거가 함께 제시될 때 설득력이 배가됩니다. 실제로 연꽃잎 표면은 나노 수준의 돌기 구조와 소수성 왁스층이 결합되어 물방울이 구형을 유지하며 굴러떨어지면서 먼지를 함께 제거하는 '로터스 효과(Lotus effect)'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원리는 이미 건축 자재, 자동차 코팅, 의류 등에 상용화되었으며,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의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만약 인터뷰에서 이러한 과학적 디테일이 추가되었다면, 청중은 단순히 신기함을 넘어 응용 가능성까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재생능력과 식물의 '욕망'이라는 관점

이유리 교수는 식물이 필요하면 기관을 새로 만들고, 필요 없으면 떼어내는 능력이 있으며, 일부는 잎을 잘라 심어도 새 개체로 재생될 만큼 강력한 재분화 및 재생 능력을 지녔다고 설명합니다. 최근에는 육상식물에서 수생식물인 개구리밥(duckweed)으로 연구 대상을 확장하며,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식물도 욕망이 있다"는 표현을 통해 식물이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먹고, 배설하고, 성장하고, 경쟁하고, 번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동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같은 필요를 해결하는 식물의 전략을 이해하는 것이 연구의 매력이자 미스터리라는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욕망'이라는 단어는 신중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욕망은 인간의 정서, 의식, 의지와 연결되기 쉬운 개념이며, 식물의 생리적 필요—광합성, 방어, 번식—를 욕망으로 묶어 표현할 때는 비유의 경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적 설명이 감성적 서사로 기울어, 식물의 자동적인 생리 반응을 '의도'나 '선택'처럼 오해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표현이 가진 힘은 분명합니다. "움직이지 못한 채 30년을 살아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은 청중에게 식물의 '정착형 지능'을 체감하게 만듭니다. 형태를 바꾸고, 재생하고, 표면을 관리하며, 환경 신호를 읽는 방식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식물은 더 이상 수동적 존재가 아닙니다. 이 관점 전환이야말로 인터뷰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식물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식물학적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인간의 생존과도 직결되며, 동물과 대비해 볼 때 생명현상 자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교수는 이를 "동그라미만 본 사람과 세모·네모도 본 사람"의 차이로 비유합니다. 생명을 다각도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생명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과학적 엄밀함을 더 보강할 여지는 있지만, 식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충분히 유효합니다. 식물을 사랑하자는 감상이 아니라, 생명을 이해하는 틀 자체를 넓히자는 제안으로 받아들일 때, 이 대화는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GRdXLG1EgS0
참고 다큐멘터리: BBC 'The Private Life of Plants' (식물의 사생활, 1995년 방영 6부작)
관련 강연: 2022 카오스강연 '식물행성(Plant Planet)'